진현수의 금융이야기



조회 수 3482 추천 수 0 댓글 0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숙연해지는 것은 주변에서 사망 소식들이 들려오면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필자가 처음 죽음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느날 이른 아침. 부모님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이셨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귀, 코, 입에 솜을 막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 뭔지도 몰랐었던 아주 어렸을 그때는 어떠한 슬프다는 감정도 느끼질 못했었다.

스무 여덟 살 되던 때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온 어느 일요일 오전.

절친한 친구에게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다.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시었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으셨지만 새벽에 갑자기 위독하셨고 병원에서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때 가장 걱정이 된 것은 무엇보다 친구가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사흘간 슬픔에 빠져있는 친구 곁에서 어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날까지 나 역시 친구 곁을 떠나지 못했었다.

그 날부터 나는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에는 꼭 가서 위로 해줘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피끓는 청춘의 뜨거움은 조금씩 삭혀져만 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하는 중 친구에게서 고등학교 친구 한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창 시절에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에 한명이었는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할 만큼 충격이었고 다음날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얼마나 많이 피웠었는지 모른다.

졸업을 하고 한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해서인지 그의 부모님은 고등학교 친구가 없었는 줄로만 알았단다. 

친구는 옥상에서 1m 높이 밖에 되지 않는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즉사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허무함 그 자체였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대학교를 졸업하여 직장에 다녔고 2000년 건설 회사에 입사를 하여 1박 2일 동안 워크샵을 갔었을 때 외할머님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기 몸살이라서 곧 나으실거라 생각하고 별 걱정이 없었는데 워크샵에서 돌아오고 나니 이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후였고 너무 황당스러워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주변에서 하나둘 죽음들이 발생하면서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 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태어난 날로부터 멀어지고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의 날이 가까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친구의 부모님, 모임 선후배의 부모님, 그리고 큰아버지, 큰 어머니의 죽음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삶 속에서 친구와도 부모님과도 이별을 하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내 마음에서 서서히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서서히 인정하였을 때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할지 생각지도 않았던 몇몇 가지 걱정과 그에 따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아내가 생기고 자식이 생기면서 이 생각들은 이제 나의 문제이기 보다는 가족의 문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작년에는 또 고등학교 한 친구가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다. 40대 중반을 넘으면서 친구 중에서는 사고가 아닌 질병으로 처음 사망한 친구였지만 그 충격은 20대 보다는 어느 정도 차분해지는 듯하다.

그만큼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 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남은 인생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지고 만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그 친구는 자기가 죽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시 그 친구가 사망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통계청에 따르면 30세부터 60세까지 사망률이 평균 20%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친구는 그 꿈에도 몰랐던 20%에 해당하고 만 것이다. 5명 중에 한명인 20%.

우리는 당연히 20% 확률에 포함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은 통계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 누군가는 0%가 되겠지만 사망을 한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100%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통계학적인 20%를 볼 것이 아니라 나를 기준해서 0%냐 100%냐를 따져야 한다.

0%가 좀 더 많을 뿐 누가 죽음의 100%에 해당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100%가 만약 나라면? 아니면 내 친구라면?

 

여러분은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언젠가는 누구나가 사망한다는 그 100%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가?

그 100%가 내일 당장 올 수 도 있고 수 십년 후에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일 나에게 또는 우리 가족 중에서 100%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럼, 우리 가족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만약 내일 정말 재수 없다는 그 100%에 해당이 되거나 조만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시한부 인생을 맞이 해야 한다면 나대신 가족들에게 책임지고 생활비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몇넌 전 형에게 물었었던 적이 있었다.

“형. 만약에 말이지...정말 만약인데 만약 내가 내일 내가 사망한다면...”

[무슨 그런 재수없는 말을 하나?]

“그러니까.. 만약이라는 거지... 만약에 내가 내일 사망한다면 형은 우리 가족을 돌봐줄 수 있겠나?”

그러자 형은 [형으로서 당연히 해야하지 않겠니.]

“근데..형 만약에 형이 그렇다면... 난 솔직히 자신 없다. 지금 나도 그렇게 녹록한 삶이 아닌데 형 가족까지 책임지기에는 내가 너무 무겁다. 형이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을 돌봐준다고 해서 너무 고마운데..

그래도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어느 정도 보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형이 큰 부담은 없을 거야.“

그러자 형은 잠깐 생각에 잠기었다. 왜냐면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였기 때문이었다.

나 죽고나면 그만인데 그거까지 무슨 걱정하냐고 했던 형이 막상 가족에게 생길 위험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에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럼 조만간 시간 내어서 우리 가족 위험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좀 봐줄래?]

 

보험은 누군가에게 닥칠지 모르는 100%라는 죽음을 그리고 그로 인해 가족에게 생길 위험에서 안전벨트를 매어주는 것이 진정한 보험이 아닐까?

그러므로 보험은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봄처럼 따스한 사랑인 것이다. 봄 = 보험 = 사랑

 

진현수.(ididit2020@hanmail.net)

(단기 투자, 위험리스크)재무설계. 퇴직연금담당, 서울대학교 은퇴설계 전문가,

 

 

이 글은 진현수 칼럼으로 유포, 배포는 할 수 없으며 저작권이 필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게시물의 내용은 각 페이지 담당자가 개별 업로드한 내용입니다.